지상에서 가장 가볍고 우아하며 공교로운 모자인 '갓'.
바다의 도시 푸른 통영.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혈관 속에는 대대로 갓 장인의 유전자가 흐르고 있다. 400여 년의 세월 동안 통영 12공방은 전통 공예의 산실로, 조선의 명품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조선시대 모든 여인의 '위시 리스트'로 손꼽히던 것이 통영자개와 장석이 달린 통영장, 통영소반, 통영대발이었다면 조선 최고의 남성 액세서리는 통영갓이었다.
조선 당대 최고의 부와 권력을 갖춘 수집가였던 흥선대원군이 통영까지 사람을 보내 갓을 맞춰 썼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고종 붕어 후 인산 때 온 국민의 흰 갓을 썼던 시기에는 전국에서 통영 갓 주문이 쏟아져 들어와 하루 300여 개 이상이 팔려나갔다고 한다.
구한말 구미 각국에 공사를 파견할 때 조정에선 "여하한 일이 있어도 갓을 벗어서는 안된다"고 엄명했다. 그것은 곧 갓이 한국의 자존심이라고 여긴 탓이다.
통영갓은 가히 조선의 명품이었다. 근대시인 백석 역시 그의 시 '통영2'에서 '갓 나는 고장은 갓 같기도 하고'라며 통영갓의 명성을 언급했다.
한국 시조학의 아버지 초정 김상옥 시인의 집안도 갓을 만들었다. 시인이 자라던 집에는 갓이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고 한다.
"갓 하나를 엮고 나면 시력을 버리고 온 몸에 진이 빠져나간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이 아니면 명품 통영갓의 명맥이 끊어진다는 자부심 하나로 머리카락 보다 가느다란 대올과 명주실을 엮는 중요무형문화재 제4호 통영갓(입자장) 정춘모 장인.
스무 살 넘어 뒤늦게 통영갓의 아름다움과 정교함에 매료돼 기교 이전에 신명을 바쳐 세월을 익히고 익히다 결국 통영갓의 자존심 그대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참 감회가 새롭지요. 통영, 잃어본 적이 없습니다. 늘 돌아올 생각뿐이었습니다. 더 넓은 곳, 더 많은 사람에게 갓을 알리고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장소가 서울이라 판단, 30대 갈등 끝에 떠났지만 40여 년 만에 다시 갓의 본향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이제 통영갓 복원과 명성회복에 여생을 다하겠습니다".
고향에서 만난 장인의 첫 대면은 통영갓에 대한 확고한 의지의 천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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