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그곳엔 아파트가 있다. 그러나 운영자가 어릴 땐 그 곳은 작은 야산이였고 언덕이였고 친구들과 나의 아지터(?)였다. 전망도 좋아, 그 언덕에 서 있으면 저 멀리 소나무 가지 사이사이로 도천 앞바다가 훤하게 보였고.. 조용할라치면 통통배 소리도 들려오는.. 좋은 곳이였다.

소나무들은 이상한 모양으로 또아리를 치며 자라 있었고 그 나무기둥 사이 사이로 나무판자 몇개 세워서 판자집도 하나 만들었다. 그 곳에서 아이들은 대장의 명령아래 한두명씩 보초도 서야했고 도리골 아이놈들이 쳐들어오는지 항상 감시해야 했다. 소나무중에서 이상하게 옆으로 기운 한 그루 소나무가 언덕 앞 쪽에 있었는데 그 나무 기둥에 걸터 앉으면 저 멀리 충무교, 통영운하, 도천앞바다, 공주섬... 더 멀리 .. 남해 섬들이 촘촘히 눈에 들어오는 게 정말 좋았다.

그 나무기둥에는 항상 아이들이 앉아 있었는데 누구라도 앉아 있다가 빈자리가 되면 바로 다른 아이가 앉아 멍하니 한동안 바다를 바라보기도 하고.. 옆 아이와 이야기도 하고 그랬다.

손가락을 뻗어 가르치는 곳은 항상 자기 아버지가 일하는 곳이였고 괜히 여기저기 멋스럽게 아는체 할때도 있었다. 내 손가락은 항상 도천 앞바다 너머 신아조선소(그당시는 대우조선소였던가..)였는데 그 중에서도 우뚝 솟은 2대의 큰 크레인이였다. 아버지는 항상 조선소에서 큰 크레인이 당신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며 나에게 자랑스럽게 말씀하시곤 하셨던터라.. 나 역시 친구들에게 저 큰 크레인이 울(?)아버지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며 아이들에게 자랑하곤 했었다.

그 소나무에 앉으면 항상 시야에는 통영 도천 앞바다가 눈에 들어왔고 그 너머 항상 신아조선소.. 조선소 가운데 우뚝 솟은 높은 크레인 2대가 눈에 띄게 마련이였다. 그러면 항상 난 아버지 이야길 자랑삼아 했던 것이였다.

그렇게 항상 도천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항상 그 시간쯤 되면.. 자리 쟁탈전이 일어나는데 이유인 즉은 바로 엔젤호였다. 서호동.. 서호시장 근처에서부터 어디선가 나타난 엔젤호는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앞에 이미 바다위에 떠 있던 작은 배들을 삼킬 듯이 돌진해 온다. 엔젤이 무슨 뜻이였지는 몰랐다. 엔젤호 그 단어가 바로 하나의 단어라 생각되어졌던 그 땐 그 엔젤호는 정말... 볼만한 볼거리였는데.. 그 하얀 물보라와 강력한 파도..에 주위 배들은 휘청휘청 금방이라도 옆으로 쓰러져 버릴 듯 했으며 엔젤호 앞으로 마주오는 배들은 조금이라도 그 심한 파도를 피하기위해 옆으로 피하기 바빴다. 엔젤호는 또한 그 생김새가 통영 연안에서 매일 보던 그런 통발배나 고데구리배와는 달랐다. 하얀.. 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엔젤이 천사라는 뜻인지는 몰랐지만 우리는 엔젤호가 날개가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날개라도 펼칠라치면.. 그 위풍당당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 당당함은 그 당시 아이들에게도 전염되어 자신이 그 엔젤호인마냥 부웅.. 소리를 내며 팔을 날개처럼 양옆으로 쭉 펼치며 달리기 시작했다. 저 멀리 산아래 까지.. 부웅~~~ 입으로 소릴 내면서...

그런데 그 날개라는 것은 엔젤호 아래 바다물 아래를 향해서 좌우로 펼쳐지는 것인데.. 지금도 그 전문 명칭은 모르겠지만 정말로 멋있었다. 그렇게 엔젤호가 지나고 나면 그 파도들은 통영운하 좌우로 밀려와 하얀 물거품으로 터져나가는데.. 이 또한 그 시간대의 좋은 볼거리였다. 아이들에겐..

통영 서호동에서.. 여수로 가는 것인지.. 어디로 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엔젤호는 어느새 그 빠른 속도로 충무다리 아래를 지나.. 통영운하를 벗어나 미수동, 인평동 바다 저 멀리 사라져버리곤 했다.

그러면 그제서야 작은 배들은 다시 가던길을 재촉했고 아이들도 긴 기지개를 펴며 .. 저녁이 되면 한둘 집으로 내려가곤 했다.

그 엔젤호는 이제 없다. 아이들이 항상 앉아서 그 엔젤호를 바라보던.. 그 옆으로 기운 소나무도 없다.. 그 소나무가 서 있던 언덕도 없어졌다.

그러나 엔젤호를 항상 띄였던, 아이들이 바라보던 그 바다는 아직까지 통영운하 아래로 오늘도 흐르고 있다. 도천동 통영운하 아래로 가면.. 항상 저 멀리서 그 엔젤호가 그 당당함을 내세우며 흰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려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