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같은 바다로 에워싸인 작은 도시 통영은 그 아름다운 풍광 때문인지 유난히 우리 근현대기를 빛낸 걸출한 예술가들을 많이 배출했다.

그 중에서도 통영의 자연 풍광을 가장 통영스럽게 묘사하는 화가 전혁림은 통영이 나은 통영의 화가이다. '색채가 없는 세상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할 만큼 색채를 중요시한 그는 한려수도의 그 푸른 색채를 담아보려 언제나 노력했으며 노력하고 있다.

화가 전혁림 말고도 문학에 유치진·유치환 형제와 김춘수·김상옥 등 시인, ‘토지’의 박경리, 작곡가 윤이상 등 걸출한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 이미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통영을 떠나 서울에 진출했고 유명을 달리한 사람도 적지 않다.

해방 직후인 1948년에는 이들 중 몇몇이 고향에 다시 모여 ‘통영문화협회’라는 문화운동단체를 결성했다. 유치환 시인이 회장을 맡았고, 얼마 전 타계한 김춘수 시인은 총무를 맡았다. 김상옥·윤이상·전혁림 등이 주요 멤버였다. 이들은 해방된 조국에서 ‘문화운동을 통한 민족정신의 앙양’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문학·연극·음악·무용·미술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행사를 가졌다.

민속무용의 발굴 공연, 창작극과 번역·번안극 공연, 미술전시회, 문학강연회를 숱하게 열어 서로 관객이 되고 독자가 되어 어우러졌다. 그들은 근로자의 자녀를 위한 중학과정의 야간공민학교를 운영하기도 했고 한글강습회 등 국어 깨치기 운동도 개최하며 통영에서의 행복한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를 궁리했다.

통영 출신은 아니지만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는 화가 이중섭·유강렬도 통영에 머물렀던 예술인들이다. 한국전쟁 때인 51년 통영 나전칠기기술원강습소의 창설과 더불어 소장을 맡았던 공예가 유강렬은 동향이던 이중섭의 통영생활을 주선했다. 전혁림 화가는 52년 이중섭·유강렬·장윤성과 함께 ‘4인전’을 가졌다. 이들은 통영에 머물렀던 3년 정도를 줄곧 어울려 다녔다. 그들은 통영을 함께 그렸으며 함께 통영을 느꼈던 것이다.

화가 전혁림은 그들이 떠나고 난 통영을 홀로 지켰다. 어쩌면 화가 전혁림이 통영에 똬리를 틀고 있으면서도 지방과 중앙,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뻔질난 인간체험들이 밑거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전혁림화가는 현재 통영 용화사 시내버스 종점으로 가는 길, 봉평동에 개인 갤러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 곳에서 여전히 작품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얼마전 'TV문화산책'에 나와 고향 통영의 아름다움과 자신의 작품세계를 열심히 설명했는데 그러한 모습에서도 그의 고향에 대한 사랑을 물씬 풍겨나왔다.

통영바다의 그 파란 색채를 종이위에서 한번 더 느껴보고 싶다면, 통영 여행길에 통영 봉평동으로 가서 전혁림 화가의 개인 갤러리를 둘러보는 것 또한 잊으면 안될 듯 하다.

- 본 글은 신문기사를 통영민박넷에서 편집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