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자가 어릴 쩍 통영 도천동 우리집 뒷 골몰길은 우리 또래 아이들의 집합장소가 되곤 했다. 오전에 학굘 파하고 오후가 되면 괜히 같이 놀 누구 없나... 하고.. 뒷 골목길을 서성인다.. ^^

그러다보면 소년들은 한둘 서로 눈칠 보다가 이내 돌넘가묵기(돌을 넘기면서 하는 놀이)를 하기 위해 줄을 쭈욱 바닥에 그린다. 그 때 누군가 의기양양하게 보케또(주머니)에서 꺼내는 게 있는게 이게 바로 화석이다. 자랑스럽게 쭈욱 .. 바닥에 부드럽게 흰 줄을 그리며 뒷걸음 치는 그 꼬마는 자기가 아니면 이 재밌는 돌넘가묵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을 괜히 .. 표현이라도 하듯 쓰윽.. 그 화석을 다시 한번 내 보이곤.. 남이 덥치기라도 할까바 보게또로 도로 넣기 바빴다.

돌넘가묵기는.. 정말 재밌는 놀이였다. 주위 넙적한 돌을 주워서.. 저 쪽 선에 세워진 상대편 돌을 향해 사정없이 날려서.. 그 돌을 넘어뜨릴 때의 그 통쾌함이란.. ^^ 그리고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때의 그 뿌듯함이란.. ^^

그렇게 놀이는 계속 되었고.. 그러다보면 으레 바닥위에 그렸졌던 그 하얀 선이 딸딸이(슬리퍼)나 운동화등에 쓸려 흐려지면.. 그 때 또 그 누군가가.. 보케또를 뒤져서 .. 누구나 가지고 싶어했던 화석을 꺼내.. 쓰윽 바닥 위에 흰줄을 자랑스럽게 그어 댔다.

화석은 그 용도로만 꼭 사용 되는 건 아니였다. 모두가 흙마당 위에서 막대로 그냥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릴 때에도.. 그 누군가(화석을 가진 자!)는 아주 자랑스럽게 아스팔트나 시멘트 바닥위에 아주 선명한 하얀 선을 그으며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려 내곤 했다. 이 쯤되면 화석은 그 또래 아이들에겐 꼬옥 하나쯤을 가지고 싶은 물건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누구나 다 쉽게 가질 수 있다면 그건 화석이 될 순 없었을 터..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뿐더러 화석은 그 질에 따라 최상품이 아니면 영웅시(?)되지 못했기 때문에 바닥에 하얀 선을 조금 희미하게 그려내는 그런 돌등은 화석이라 칭해지진 못했다.

그런 어느 날.. 누군가가 큰 비밀을 알아왔던 것이다. 구름다리(현재의 충무교 - 지금은 보수공사로 다리교각이 많이 달라졌음) 미륵도 방면 다리 아래 화석이 무지하게 많다는 것이였다. 아.......... 진짜란 말인가... 그렇다면 그 곳에만 가면 화석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소년들은 서로를 둘러보며 .. 작은 눈망울을 껌뻑거렸다.

가자...! 가야한다..! 화석만 가질 수 있다면.. 시멘트 바닥에서도 쉽게 그림을 그릴 수 있고.. 맹국이네 거친 담벼락에도 쉽게 낙서를 할 수 있으며..! 돌넘가먹기를 할 땐... 다른 친구들 모두가 자기를 영웅시 해주게 만드는 그 화석.. !

그러나 일은 그렇게 쉽진 않았다. 당시 7살이였던 도천동에 살던 또래의 친구들은 다리건너를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ㅡ.ㅡ;;;; 물론 엄마를 따라.. 할매를 따라 가본 적은 있었겠지만.. 혼자 가본적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가야만 한다.. 일단 구름다리를 건너가는 건 포기를 했다. 무섭기때문에..(지금도 필자는 혼자서 구름다리를 걸어서 건너가는게 무섭다. ^^;; ) 그러나 차선책은 있었다. 해저터널..! 해저터널을 건너가면 되는 것이였다. 모두들.. 도천동 해저터널 입구를 항해 걸었다. 그리고 몇명의 꼬마들은.. 일열로 나란히 비장한 눈빛을 하면서 길을 걸었다. '우린 지금 화석을 찾아서 간다...!' 그들의 눈빛은 빛났으며 그들의 앞길을 감히 막고자 했던 사람은 없었던 것이였다~~~~!! *.*

미수동쪽 해저터널 입구가 빛을 발하며 보이면 누가 먼저 가나 시합이라도 하듯..아이들은 뛰기시작했다. 아마도.. 빨리 가면 남들보다 더 많은 화석을 가질 듯 해서였던지.. 뛰었다. 초여름.. 한줄기 바닷바람이 아이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쳤다...

그리고........

드디어 눈에 서서히 보이는 .. 화석은.. 가까이 가서 보면.. 그것은 하얀 돌무더기였는데.. 조각을 깨서 바닥에 그려보면 두터운 소리와 함께 바닥에 잘 그려지지 않는.. 그냥 하얀 돌이였을 뿐.. 우리가 찾던! 바닥에 잘 그려지는, 질 좋은 화석은 아니였던 것이였다..

모두가 낙담을 해서.. 뒤돌아 다시 미수동쪽 해저터널 입구로 향할 때.. 유독 한 소년만이 보게또(주머니)에 든.. 하얀 돌멩이를 만지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도 그 소년의 작은 화석은.. 여전히 또래 친구들에게 그 소년을 영웅으로 만들어 줄 것임을 알고 있었기때문이였을까... 자신만이 화석을 가졌다는.. 자부심이였을까..

바로 그 소년의 작은 화석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지금은 다 갈아져서 없어졌지만.. 지금 다시 그 때 그 시절.. 그 화석을 가지고 싶어지는.. 마음이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