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끝나고.. 이중섭님이 부산에 머무러고 있던 어느 날, 그는 통영에 살고 있던 공예가 유강열님을 만나게 됩니다.

유강열님은 동경 유학 시절과 원산 시절에 이중섭님과 비교적 가깝게 지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통영도립공예학원 주임을 맡고 있었습니다.

이중섭님은 유강열님이 통영에 놀러 가자고 해서 따라나서게 되는데 유강열님의 소개로 결국 이중섭님은 통영도립공예학원에서 미술개론, 석고데생 따위를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이중섭님은 유강열님이 자신의 공방 곁에 마련해준 다다미방에서 생활했다고 합니다. 그 방에서 화가인 남관, 박생광 등과 함께 기거하게 된 것이었습니다.(그 위치는 지금의 항남동 일대 포트극장 입구로 들어가는 그 길목에 위치했습니다. - 가치있는 장소로 보존해야 하는 데.. 그 위치도 정확히 모르고 있는 실정이라니...)

그는 곧잘 은박지에 그림(은박지그림은 이중섭님이 잘 그렸던 그림으로 뉴욕시립박물관에 3점이 영구전시되어 있습니다.)을 그려 이웃사람들에게 싼값에 팔고, 그 돈으로 같이 기거하는 화가들에게 술을 사주기도 했답니다.

이중섭님은 마음이 심란하고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통영 앞바다에 있는 미륵도의 용화사에 가서 머물 곤 했습니다. 그 절의 도솔서원에 있는 효봉 스님을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효봉 스님은 이중섭님과 고향이 같았는데, 그래서 고향 이야기가 나오면 밤이 새는 줄도 모를 지경이었다 합니다.

"그 스님! 차암 맑으시더라. 차암 맑으셔........."

이중섭님은 효봉 스님을 만나고 돌아와 유강열님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한편 유강열님은 학원 일 관계로 부산에 자주 다녀오곤 했는데, 이중섭님에게 일본에서 수입된 질 좋은 물감과 붓을 사다주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중섭은 자신이 쓰던 몽당붓을 사용할 뿐, 새붓은 다른 사람들에게 바로 줘버렸습니다.

이중섭님이 통영에 있을 때 다시 만난 것이 소였습니다. 화가 이중섭님의 그 소가 통영에서 다시 그 모습을 나타내게 된 것이었습니다.

한 동안 모습을 감췄던 화가 이중섭님의 소가 통영 앞바다에서 다시 모습을 나타낸 것 ... 무슨 이유였을까요?

원산의 소와는 달리 통영의 소는, 그의 그림 속에서 특히 황소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불알'이 강조되고 있었는데 그는 암소는 절대로 그리지 않는 결벽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반드시 힘찬 율동의 굵은 선으로 강조된 그림을 그리는데, 심지어는 그의 가족이 수레에 타고 피난가는 그림에서조차 그것을 끄는 황소의 불알을 유난히 크게 그렸습니다.

화가 이중섭님으로 하여금 다시 힘찬 황소를 그리게 만든 건 아마도 통영을 휘감고 있는 통영 미륵산의 산줄기가 힘찬 등줄을 자랑하는 소의 그것과 닮아 그런 건 아닌가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저 먼 태평양을 향해 뛰어들 듯이 자기 등짝을 힘껏 밀어 올린 황소 등같은 미륵산 등줄기... 그 모습에서 불과 몇년이지만 통영에 머물면서 다시 황소를 그려낸 화가 이중섭님의 그 때 그 시선을 쫓아가 봅니다.

- '증언과 평가/ 이중섭'편에서... 통영민박넷 편집 - 무단복제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