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뭔가를 갈고 있다.
스삭스삭.. 그것은 마치 신성한 의식처럼 몇몇 둘러앉아 한명이 갈고 있다. 큰 돌위에 주먹만한 맹(몽)돌을 주워서 큰 돌위에 뭔가를 올려놓고 스삭스삭 간다.
주위에 버려진 유리조각 그리고 사기그릇 조각.. 그리고 조개껍데기도 좋다.
그렇게 곱게 갈려지는 동안 한쪽에서는 아교를 불에 녹이는데 이 또한 참 지금 생각하면 위험한 행동이였지만 그 당시 우리는 무슨 의식이라도 하듯 버려진 빈 깡통을 주워 개울물에 잘 씻어 삼발이를 놓고 그 아래 불을 붙이고..
아교를 깡통에 넣으면 잘 녹았다.
아교가 녹을 쯤 스삭스삭 갈던 가루들도 완성이 되었는데 이제는 기술자가 나설 차례다.
그 중에서 나이가 좀 있는 아이가 얼레에 감긴 실을 풀어 아교를 붙이고 바로 연이어 잘 갈아진 가루 위로 실을 지나가게 하면 하얀 가루가 실위에 붙어 두텁게 되는데.
잘 말려야 하기에 하루정도는 둬야 한다. 그러면 완성이다.
도천동 방공호 뒤 풀밭에서 항상 자행(?)되던 이 음밀한 작업은 몇몇 구성들만 공유하는 기술이기에 유출의 위험이 있는 다른 멤버들은 초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누구나 다 그렇게 했는데 비밀이라고 할수도 없겠다. ^^;
도천동 전신전화국 아래 필자가 살았는데 지금은 도로가 나서 집이 길이 되어버렸지만 그 옆으로 또래의 친구들이 많이 살았다.
그렇고 그런 날들중에 이렇게 음밀한 작업이 이루어지고 난 다음날에는 연이 하나 올라온다. 도천동 많고 많은 주택가중에서 한곳에서 연이 올라오면 또래 친구들은 다들 옥상으로 올라오는데 그 중에 필자도 올라오는 연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옥상으로 올랐다.
도전장을 보낸 것이다.
그리고 조금 지나면 미화당(그 근처에 미화당 빵집이 있었다해서 미화당이라 불렀다.) 근처에서 연이 하나 더 올라오는 데 바로 적기 출현이다!!
싸움의 시작이다.
유리가루로 중무장한 우리편 방패연은 기세등등하게 싸움을 걸어가는데 저쪽편 미화당 방패연도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걸 보면 그 쪽도 유리가루로 중무장을 했음에 틀림 없다.
누구의 작업이 더 치밀했던가? 어느 편의 작업결과가 더 우수한가?라는 자존심의 대결이 되어버린 싸움에서 아이들 또한 도천동 전화전화국 패밀리와 미화동 패밀리로 나눠 옥상에서 응원을 했다.
두두두둥... 둥 콰쾅~ 우수수수루루루.. 두두두두둥.. 콰광!!!!
비록 배경음이 있을리 만무하지만 우리들 또래의 아이들 마음속에는 이미 천둥번개같은 소리가 울려퍼졌다.
연싸움에서 지는 마을팀(?)의 자존심은 도천동 앞바다 바다 깊이 보다 더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알기에.. 싸움은 꽤 오래 진행되었다.
그러다!!! 누군가가 외친다!!!!
"연 날랐다!!!!!!!!!!!!!!!!!!!!!!!!!!!!!!!!!!!!!!!!!!!!!!!!!!!!"
확성기도 없고 지나가는 차들도 있어 시끄러울만도 한데 그 소리는 필자의 귓가에 팡팡 울려퍼졌고 누구의 연줄의 떨어졌는지 관심을 두기보다 연줄 떨어진 연이 바람에 얹혀 하눌하눌 떨어지는 그 허공의 길만을 쫗아 다들 뛰기 시작했다.(승패는 떨어진 연을 주워보면 바로 알기에)
왜냐하면 연싸움에 져 연줄이 떨어진 연은 줍는 자가 임자라는 불문률이 있었기에 다들 방패연을 줍기위해 내달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맨날 아버지에게 연을 사달라 조르면 허름한 가오리연만 사다주는 그 때, 우람한 방패연을 공으로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칠리 없다.
허공.. 하늘만 보고 달린다.
도천동 골목길을 연줄 끊어진 방패연이 떨어지는 모습을 쫓아 하늘만 보고 달린다. 넘어지고.. 까지고 .. 피나고..
연이 거의 날고 날아 땅에 닿을 때쯤 되면 다들 자연스레 한곳에 모이게 되는데..
으르렁으르렁.. 으러렁 거리는 꼬맹이들이 마치 먹이를 본 꼬마사자처럼 보인다.
오늘은 방패연이 어느 집 옥상 장독대위로 떨어진 모양이다. 그 집 주인장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루루루루루 동네 꼬맹이들이 맘껏 열어둔 마당 대문으로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면.. '이 자식들이~' 하면서 혼내는 주인이 다반사인데 오늘 주인아주머니는 뭐꼬 뭔일이고 하면서 그닥 큰 반응을 보이지는 않아 다행이다.
그렇지만 필자는 그 어느집 근처도 가기전에 연 주웠다!!!!!!!!!!!!!!라고 외치는 한 꼬맹이의 외침을 들어야 했고 그기까지 달려오다 까진 무릅팍에 난 생치기에 침을 연신 바르기만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렇게 달려올때는 몰랐는데 힘없이 돌아가려니 그 거리가 왜 그렇게 멀게 느껴지는지..
아마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기가 해방다리 지나 남망산 가기전 지금의 적십자병원 근처이려나..
아련하다.
방패연을 날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요즘은 보기 힘들기에 더 아련하다.
* 외삼촌이 나전칠기를 해서 아교를 몇개 훔쳐오곤 했는데 외할머니에게 들켜서 장난갑 플라스틱 야구빠따로 맞은 기억이 생생하다.
* 신문지를 길게 짤라 연꼬리도 만들어줘야 멋지는데 그 꼬리를 누가 더 길게 하는가도 자존심의 대결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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