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통영을 말할 때 예향이라고 말한다. 예향 통영.
예향이라 함은 예술의 고향이라는 뜻인데 그 이름에 걸맞게 통영에는 유달리 예술가들이 많다. 음악가, 미술가, 시인, 문학작가등 그 분야도 두루두루인데 대표적인 작가들을 말하자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리라 생각한다. 음악에 윤이상, 미술에 전혁림, 시인에 유치환, 김춘수 소설에 박경리선생등 아주 쟁쟁하신 분들이시다.

그들이 고향이 통영이라는 공통점을 가지는 것은 우연의 일치라 할 수 없으리라. 고향이라는 것은 유년시절 자아가 생성되기 시작할 때 눈에 비치는 모든 것들, 귀에 들리는 모든 것들, 코, 입, 손으로 느끼는 모든 것들이 있는 곳이기에 고향은 예술가들이 성인이 되어 작품할동을 할 때 뿜어내는 작품성향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이다.

그럼 통영에는 어떠한 특성이라도 있단말인가? 필자는 단호하게 예라고 분명히 말한다. 우선 바다가 있고 육지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여타의 다른 어촌에도 있다고 혹자는 핀잔을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어우러짐은 다른 시도, 군들이 감히 비슷하다 말하지 못할 터... 바다가 도시 중앙을 관통하고 육지가 바다로 나오고 들어가는 곡선이 우찌도 이렇게 난잡(?)하게 꼬여 있단 말인가?

섬의 갯수에서도 여백의 미와 어우러진 그 모습은 바다 인근 높은 산에 올라 바다 전망을 바라보노라면 입을 다물지 못할 지경이다. 통영의 파도소리는 유명 음악가의 오선지에 그대로 옮겨졌고 섬과 도시전경은 유명 화가의 이젤 위에 그대로 수가 놓아졌고 통영사람들이 바다와 맛대여 살아가는 소리와 느낌은 원고지 한 페이지 한 페이지마다 유명 작가로 인해 글로 채워졌던 것이다.

세월은 흐른다.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것은 변한다. 초갓집 일색이던 동네는 도시로 바뀌고 배를 타고 건너던 바다물길은 다리가 놓여졌으며 짙푸른 남망산 언덕위에도 크다란 두꺼비 한마리가 앉아 버렸다.

그러나 고향 통영의 느낌은 언제나 그대로인지라 사람들이 나고 자라 느낌을 가지고 그 느낌을 표현하는 사람들의 자리는 다른 사람에 의해 바뀌게 될지라도 그 느낌의 표현은 그대로인듯 하다. 필자가 두서 없이 긴 글을 써가며 고향 통영의 자랑을 하는 이유는 오늘 한 미술작가를 소개하기 위함이다.

바로 김재신화가이다. 지인의 소개로 남망산 시민문화회관을 찾은 필자는 어려운 그림을 괜시히 피해 버리는 습성이 있어 오늘도 추상화라면 가지 않으리라 생각했건만 오늘 본 김재신 화가의 작품은.. 필자의 짧은 그림평가실력으로 볼 때도 가슴짠한 느낌을 가져다준다.

통영 항구의 또 다른 느낌이다. 남망산이 있고 저 멀리(그림으로서는 그다지 멀지 않아 보였다) 충무교, 통영대교가 보이고 통영 운하가 그 아래로 흐른다. 그리고 남망산 뒤쪽의 한 그루의 나무.. 미류나무도 아닌 것이.. 떡갈나무 같기도 한.

작가에게 물었다.
"작가님 남망산 언덕 뒤편의 한그루 나무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입니까?"
작가는 한동안 말이 없더니 같이 관람온 필자의 동생이 한 귀걸이를 가르키며 말했다.
"귀걸이 같은 것이지요."
"아..."
하며 낮은 대답만 하고 .. 이해하려 해 본다.

남망산 공원과 통영대교가 유달리 커 보이는 그림인데 웬지 모를 어떤 작품과 유사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는 작품의 모방성이라고 말할 순 없는 것으로서 아마도 작품평가 실력이 낮은 필자는 남망산이라는 공통점에서만 집착해서 그 유사점을 생각해 내는 거 같아 웬지 미안하다.



상세히 말하자면 예전 한동안 통영에 머물면서 통영을 그렸던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화가 이중섭의 남망산이 생각난 것이다. 이중섭은 소 그림으로 유명하지만 통영에 머물면서 통영의 풍경을 여러번 그렸는데 지금 김재신 화가의 작품을 접하는 있는 이 와중에 남망산이라는 그림 소재가 문득 이중섭이 그린 남망산 오르는길이라는 작품의 남망산을 연상케 했다. 하하.

김재신 작가는 한동안 전시관을 보이더니 한동안 안 보인다. 작가의 소갯말도 없다. 단지 작가는 작가가 할 소갯말을 작품속에 다 해 놓았으니 천천히 살펴보라 한다. 맞는 말이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면 된다. 너무나 간단 명료한 듯 하면서도 쉽게 할 수 없는 말이기도 하다.

한 시간여를 작가의 작품을 보고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천천히 남망산을 내려온다. 남망산은 통영 사람들에게 무슨 의미일까...? 김재신 화가에게 묻고 싶었는데.. 묻지 않아야 할 듯 하다.

김재신 작가의 아름다운 작품세계를 카메라에 잡지 못한 것이 무척이나 아쉽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좋은 작품을 감상하게 해 주신 통영 김길환선배님에게 감사드린다.

- 2006년 9월 초가을 어느 날 저녁..